우유 한 팩을 정화하는 데에 3000L의 물이 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유 3000L를 정화하는 데에는 몇 L의 물이 들어갈까요?
정답은 3000L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냐고요? 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세요.
물 3000L로 우유 1L를 먼저 정화합니다. 그러면 이제 깨끗한 물 3001L가 생겼습니다. 이제 우유 1L를 더 정화합니다.
이제 깨끗한 물 3001L가 생겼군요. 이런 식으로 반복하면 우리에게 남는 건 깨끗한 물 3001L입니다.
자! 제 말을 들으니 정답이 3000L가 맞는 것 같지요? 아직도 뭔가 이상하시다고요? 그러면 하나의 이야기를 해 드리지요. 옛날에 배가 한 척 있었습니다. 그 배는 그냥 배가 아니라 테세우스라는 영웅이 타고 온 배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배를 보관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배의 일부분이 썩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썩은 판자를 새 판자로 교체했지요. 그런데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다 보니 배의 모든 부분을 다 새 판자로 고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난 이 배도 테세우스가 타고 온 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역설은 사실 아주 유명한데요, 테세우스의 배 역설이라고도 불립니다. 제가 처음에 한 이야기도 비슷하지요. 우유를 얼마만큼 섞어야 깨끗한 물인가? 하는 문제이지요. 우유 한 팩을 물 3000L로 정화한 용액은 깨끗한 물인가? 라는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 3000L이야기는 한 번쯤은 들어보셨겠지만, 과학적으로는 그렇게 설득력있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합니다. 희석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미생물에 의한 분해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수치라고 하네요.
그러나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생각해볼 점들이 꽤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숭례문이 불타는 사고가 있었지요. 이 숭례문은 복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문을 여전히 숭례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예전의 그 재료들은 대부분 새 재료로 교체되었는데 말이지요.
멀리 갈 것 없이 우리의 몸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몸의 세포들은 끊임없이 교체됩니다. 1초에도 엄청나게 많은 세포들이 교체된다고 하는데요. 우리의 몸의 세포가 전부 새 새포로 교체되는 데에 평균 80일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그냥 한 1년 정도 걸린다고 해보자구요.
그러면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구성 물질이 전혀 다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사실은 이러한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닐까요?
무엇이 테세우스의 배를 테세우스의 배로 만들까요? 재료일까요? 시간적 연속성일까요?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요?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서 올까요? 생김새? 정신? 아니면 사람들의 인식?
이런 동일성에 대한 철학적 생각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들이 많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을 얻을 때 우리는 또 하나의 통찰력을 얻게 되지요. 다시 질문드리겠습니다. 우유 한 통을 정화하는데에 얼마만큼의 물이 필요할까요?
이상과 사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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